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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상자/근세 미술 15~18세기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 화가 Titian(티치아노 베첼리오 작품세계 - 초상화

by 재탄생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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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 작품세계 - 초상화

TITIAN(Tiziano Vecellio, 1485-1576) 자화상 Self-Portrait

1567년, 

TITIAN  자화상

1639, Sill. etching, 

34세의 자화상

1640, Sill, etching, National Gallery

​Self-Portrait 자화상 

c. 1546–47, 캔버스에 오일, 96 cm × 75 cm (38 in × 30 in), Gemäldegalerie, Berlin

 

 

티치아노 베첼리오(이탈리아어: Tiziano Vecellio, 1488-90년경 ~ 1576년)는 북이탈리아의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출생하였고. 베네치아에 전해진 플랑드르의 유채화법을 계승하여 피렌체파의 조각적인 형태주의에 대해 베네치아파의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하고, 생애의 마지막까지 왕성한 제작활동을 하였던 화가이며, 베네치아파 회화의 정점에 올라서서 자신의 후기 작품과 함께 이미 바로크 초기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대가입니다. 특히 그는 만년에 천재적 면모를 보이면서 왕후와 같은 부와 명예를 누렸던 드물게 행복했던 예술가 이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신성 로마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이던 카를 5세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림을 그리던 중, 실수로 붓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티치아노가 붓을 다시 주우려 했으나 카를 5세가 먼저 주운 다음 티치아노에게 건넸는데 이때 "티치아노 자네 정도면 황제의 시중을 받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9세 때 베네치아로 나와 모자이크 장인(匠人) 주카토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젠틸레 벨리니(1429년 - 1507년 2월 23일)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년?~1516년) 형제에게 사사하고, 다시 그 동생인 조반니 벨리니의 문인이 되었으며, 동문인 조르조네 Giorgione에게도 배웠습니다.

초기 작풍은 조반니 벨리니와 조르조네의 기법을 따랐으며, 피티화랑의 《합주(合奏)》 등은 조르조네의 작품인지 티치아노의 작품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유명한 "성애(聖愛)와 속애(俗愛)"에서는 이미 그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의 견실함과 명쾌한 색채를 보여주었고, 1518년 완성된 베네치아 프라리성당의 제단화 《성모승천》에서는 선배들의 영향을 벗어나 자유로운 동적 표현으로의 진로를 보였습니다.

 누비 소매 옷을 입은 남자  A Man with a Quilted Sleeve

c. 1509,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81.2 cm × 66.3 cm (32.0 in × 26.1 in), National Gallery, London

Portrait of Jacopo Sannazaro

1514–18, Royal Collection, UK

여인의 초상 La Schiavona

1510, 캔버스에 오일, 119.4cm × 96.5cm (47 인치 × 37.9 인치), National Gallery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있는 "비너스의 예찬The Worship of Venus" "주신(酒神) 축제"를 비롯하여, 23년의 "바커스와 아리아드네" 등 일련의 고전신화 그림, 드레스덴회화관의 "가시나무로 만든 관", 루브르미술관의 "장갑을 쥔사나이" 등은 구도의 동적 리듬에 한층 진보가 보이며, 색채도 명도(明度)를 더해서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확고한 기반을 닦은 그는 국내외의 여러 왕후들로부터 위촉받아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그 중에서도 독일황제 카를 5세를 위해 그린 33년의 "개를 데리고 있는 카를 5세의 입상"은 그의 초상화 중의 걸작입니다.

 

장갑을 낀 사나이 Man with a Glove

1520-1522, oil on canvas, 100 cm × 89 cm (39.3 in × 35 in), Louvre Museum​

개와 함께 있는 카를 5세의 초상 Portrait by Jakob Seisenegger

1533, Oil on canvas , 192 cm × 111 cm (76 in × 44 in) , 프라도미술관 Prado, Madrid

뮐베르크의 전투에서의 카를 5세 황제의 기마상 The Emperor Charles V on Horseback, in Muehlberg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

1548, oil on canvas, 335 cm × 283 cm, Museo del Prado​

 

붉은 모자를 쓴 남자의 초상화 Portrait of a Man in a Red Cap

c. 1510, Oil on canvas, 82.2 cm × 71.1 cm (32.3 in × 27.9 in), The Frick Collection

교황 바오로 3 세와 손자 알레산드로, 오타비오 파르네세 Portrait de Paul III avec ses neveux

1546년, oil on canvas, 210 cm × 174 cm, Musée de Capodimonte

45년에는 로마 교황 바오로 3세의 초빙으로 "교황 바오로 3세와 그손자들"을, 48년에는 카를 5세의 초빙으로 "카를 5세의 기마상"을 그려, 원숙한 기법을 보여주었습니다.

플로라 Flora

c. 1515, Oil on canvas, 79.7 cm × 63.5 cm (31.4 in × 25.0 in), Uffizi Gallery, Florence

 

거울을 보는 여인 Woman with a Mirror

c. 1515, 캔버스에 오일, 99cm × 76cm (39 인치 × 30 인치), 루브르박물관, 파리

또한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의 많은 초상과, "프랑수아 1세의 초상" "리미날디의 초상", 그 밖의 몇 점의 자화상 등, 그 성격묘사의 예리함은 그의 투철한 사실성의 깊이를 말해줍니다.

특히 그는 만년에도 왕성한 제작욕을 보여 "형관(刑冠, 가시면류관)"과 같이 격정적인 장면을 즐겨 그렸으며, 필치는 더욱 강해져서 마침내 그의 예술은 단려한 고전적 양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의 선구로서 17세기의 P.루벤스, H.렘브란트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Portrait of Laura Dianti

c. 1520–25, oil on canvas, 119 cm × 93 cm (47 in × 37 in), Collezione H. Kisters, Kreuzlingen

Woman in a Fur Coat

1536-38, Oil on canvas,95 cm × 63 cm (37.4 in × 24.8 in), Kunsthistorisches Museum​

안드레아 그리티 총독의 초상 Doge Andrea Gritti(1455년 4월 17일~1538년 12월 28일)

1536-38, Oil on canvas, 95 cm × 63 cm (37.4 in × 24.8 in), National Gallery of Art / Samuel H. Kress Collection​

페데리코 곤차가 2세의 초상 Portrait of Federico II Gonzaga

c. 1529, Oil on canvas, 125 cm × 99 cm (49 in × 39 in), Museo del Prado, Madrid.

마리아 막달레나 Penitent Mary Magdalen

1565, oil on canvas, 119 cm × 98 cm (47 in × 39 in),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그림: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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