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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상자/텔레비전

KBS 한국인의 밥상 제569화 / 우중진미, 마음을 적시다

by 재탄생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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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회] 우중진미, 마음을 적시다 / 2022년 7월 28일 19:40 방송

 
 

KBS1 <한국인의 밥상> 569회 우중진미, 마음을 적시다

■ 기획 KBS/ 프로듀서 정기윤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연출 남호우 / 작가 전선애
■ 2022년 07월 28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8시 30분 

 

비가 오는 날이면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춤을 추죠, 노래를 부르면서...
 
“ I'm singing in the rain. I'm singing in the rain ” 
사랑은 비를 타고, 추억도 비를 타고 오는가 봅니다
- 배우 최불암 
 
 
 
여름은 비의 계절
예고없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가버리고
속절없이 부슬거리다, 장대처럼 한꺼번에 쏟아내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간절한 기다림의 생명수
또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그리움
 
 빗소리가 마음을 두드리면, 오래된 기억들이 깨어나고,
귓가를 맴도는 익숙한 노래처럼
문득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메마른 인생을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 같은 맛,

긴 장마 끝자락에 만나는 비와 음식 이야기!

 

비가 오면 생각난다, 애호박  

비가 오면 유독 먹고 싶어지는게 전이고, 전 하면 한창 제철인 애호박이 떠오른다.

강원도 화천군은 전국 노지 애호박 생산량의 2-30% 가량을 차지하는 애호박 주산지. 일교차가 큰 날씨 덕분에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해 인기가 많다는데.. 7월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노지 애호박은 하루만 지나도 금방 쑥쑥 크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와 모양이 애호박을 수확하려면 비가 와도 태풍이 불어도 일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다. 장마도 폭염도 피할길 없는 고된 여름농사지만 비가 오는 날은 애호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땀이 빗물처럼 흘러도 힘든 줄 모른다.
종일 비가 내리면, 안주인들은 달큰하게 맛이 든 애호박으로 전을 부치고, 감자를 갈아 애호박을 썰어넣은 넣어 고소하게 감자전을 부쳐낸다. 지글지글 빗소리를 닮은 전 굽는 소리에 입맛이 당기고, 호박잎 우산을 쓰고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달달 볶은 애호박과 매콤한 양념장을 얹은 애호박국수에 호박꽃만두까지, 더위에 지친 애호박 농부들의 마음에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같은 우중별미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낙숫물 소리에 술이 익으면 마음이 먼저 취한다 


경주 양동마을은 600여년의 세월 그대로를 간직한 전통 한옥마을.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는 이탁원씨는 5년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옛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집집마다 마당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제거하고, 문풍지를 새로 바르는 등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느라 분주해진다. 일명 ‘비설거지’ 라 부르는 장마맞이 대청소! 오래된 한옥이라 손봐야 할곳들이 많지만, 옛집에 사는 즐거움이 더 크단다. 비가 오는 날은 빗소리를 듣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까지 고요해진다는데... 고향집에 돌아온 후, 옛 추억을 떠올려 시작한 게 바로 술을 빚는일 이었단다.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듯, 술맛이 달랐고, 집에 술독 비는 일이 없도록 자주 술을 빚으셨던 어머니 옆에서 고두밥을 훔쳐 먹던 추억이 생생하다는 이탁원씨.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항아리에 담아 놓으면 솨~ 하며 소나기가 쏟아지듯 술이 익는 소리가 정겹고, 2차 발효한 청주를 소주고리에 올리면, 빗방울처럼 떨어지던 맑은 소주 맛에 빠져 살고 있단다. 정성스럽게 빚은 술한잔에, 숯불에 구운 상어고기인 돔배기 구이와 머위잎에 찐 가자미살로 만든 만두소를 넣고 찐 향긋하고 쌉싸름한 머위가자미편수, 새콤하게 무친 문어숙회까지, 술익는 소리가 비처럼 쏟아지는 고향집 툇마루, 빗소리에 먼저 마음이 취하는 우중진미를 맛본다.

 

둠벙, 빗물을 모아 가뭄을 이기다 – 경남 고성 평부마을  

비는 누군가에겐 생명이고, 간절한 기다림이다. 올해 봄은 60년만에 가뭄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비가 내리지 않아 농부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야 했다. 

오랜만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린 경남 고성군 평부마을. 빗소리에 서둘러 논으로 나온 농부들의 걸음이 바빠진다. 빗물이 땅속에 잘 스며들도록 밟아주기 위해서다. 가뭄이 길었지만, 평부마을 농부들의 걱정을 덜어준건 바로 논 사이 만들어놓은 ‘둠벙’이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빗물을 모아 가뭄에 대비해왔는데, 빗물이나 지하수를 가두어 놓은 물웅덩이가 ‘둠벙’이다. 저수지나 수리시설이 부족한곳에서 둠벙은 농부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단다. 고성군에만 200여곳이 넘게 남아있는 둠벙은 보존 및 보호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둠벙은 농수를 저장하는 물 저장소이자 다양한 습지 생물들을 품어 키우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환경오염탓에 점점 사라지고 있는 논고동도 흔하게 볼수 있고, 토종 미꾸라지와 민물새우도 둠벙의 주인이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논고동과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도 생생하다. 미꾸라지는 호박을 큼직하게 썰어넣고 푹 고아 체에 거른다음 추어탕을 끓이는데, 호박이 들어가 국물맛이 시원하고, 여기에 알싸한 향의 방앗잎과 숙주,배추우거지,고사리등 나물을 듬뿍 넣고 구수하게 끓인 평부마을표 추어탕은 비오는 날 최고의 보양식. 논고동은 고기 못지 않은 단백질 보충식으로 예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단다. 물에 해감을 하고, 삶아서 알맹이를 일일이 꺼낸 다음 소금에 여러번 문질러 씻어야 하는게 보통 수고로운게 아니지만, 매콤새콤하게 무쳐 놓으면,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 찾는데는 이보다 좋은게 없단다. 비오는 날은 장떡 부치는 날, 향긋한 방앗잎에 매운고추와 된장을 넣고 반죽을 만들어 호박잎위에 얹어 찌면, 짭쪼롬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 비가 안와도 걱정,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인 농부들의 애환과 간절한 바람이 담긴 옛 음식을 맛본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정선 덕산기 마을 사람들의 호우시절 

강원도 정선읍 덕우리(德雨里), ‘덕이 있는 비’가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비가 오면 풍경도 일상도 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자리잡은 덕산기 계곡은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비가 오면 맑은 물이 흘러 그림같은 풍경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은곳이란다. 하지만, 길이 따로 없는 산중오지라, 길 역할을 하는 계곡에 물이 무릎이상 높이만 올라와도 길이 사라지고 꼼짝없이 갇히는 은둔의 오지가 되고 만다. 덕산기 계곡 끝자락, 오래된 옛집을 고쳐 살고 있는 최일순씨는 20년전, 친할머니가 살던 집터였다는 곳을 찾아 왔다, “바로 여기구나”싶었단다. 연극배우이자 오지여행가로 살아온 그에게 새로운 삶의 무대가 되어준 덕산기 마을에는 주민이라고 해야 모두 4가구가 전부. 비가 오면 빗소리를 신호삼아 찾아오는 이웃들도 도시생활에 지쳐있다 이곳에 마음을 빼앗겨 산중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란다. 두툼한 더덕 몇뿌리 캐다 고추장만 발라 아궁이 불에 굽고, 부추에 나물을 얹어 전을 부치고, 쌀뜨물에 곰삭은 새우젓으로 감칠맛과 구수함을 살린 할머니표 두부찌개가 얼큰하게 끓으면, 막걸리 안주로는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단다. 비가 오면 고립이 되고 마는 산중 생활이지만, 욕심내지 않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법을 자연에서 배우며 산다는 세남자. 빗소리를 들으며, 이웃들과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 나눌수 있는 하루에 감사하며 산다는데..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비처럼 메마른 인생을 적셔주는 단비같은 산중별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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